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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컬럼 한의사 원장실 탈출기 Exodus – 위험한 나라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3부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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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 둘째 날〕

 

on 02.10.2017


오늘은 월요일, 테르미니 역은 사람들로 붐빈다. 산 조반니 역에서 내렸다. 

출구로 나오니 아피아 광장이 바로 보였고, 로마 도심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아우렐리우스 성벽이 서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로 뻗어 나가는 아피아가도는 이곳을 통해 도심으로 빠져나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할 정도로 로마제국은 간선 도로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 간선 도로는 현재 이탈리아 도로체계의 바탕이 되었다.


아우렐리우스 성벽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파사드1)를 

자랑하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로마 최초의 대성당이자 아비뇽 유수2) 전까지 오랜 기간 교황청이 있던 곳이다. 

밀라노 칙령으로 공식적인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자 당시 교황은 이교도 유적이 

가득한 로마 중심지를 피하여 성벽 근처 외진 곳에 첫 교회를 지었다. 

지금도 이곳은 공식적인 로마 교구 주교좌성당(로마 주교가 곧 교황)으로 성당 중 최고 지위를 인정받는다. 

그 때문에 바티칸에서 처음 선출된 교황도 바티칸 밖인 이곳에 먼저 와서 착좌식 겸 미사를 거행한다고 한다. 

성당과 붙어 있는 라테란 궁전은 교황의 거처이자 교황청으로 쓰였던 건물이고 

최근에는 무솔리니와 교황청간의 라테란 협정이 맺어진 역사적인 공간이다. 

이른 아침이라 근무시간이 아닌지 보안 검색대 요원들은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고 있고 우리는 별다른 검색 없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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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테란 성당 내부 (12사도 상)


성당 중앙 문은 엄청난 크기의 청동 문인데 로마제국 원로원의 문짝을 떼어 왔다고 한다. 

정면부 구석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큰 대리석상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광활한 바실리카 구조3)가 위압감을 준다. 

특히 거인 크기의 12사도 상(像)은 나를 더욱 작게 만든다. 

발다키노4) 높은 곳에 베드로와 바울의 은제 흉상이 있었는데 흉상의 머리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실제 두개골이 들어 있다고 한다. 

설명을 읽고 보니 어두컴컴한 빛깔의 흉상이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발다키노 왼쪽으로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다빈치 그림 아님) 

아래 작은 나무 조각이 금제 장식 안에 들어 있는데 최후의 만찬 당시 쓴 실제 나무 탁자 조각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성혈도 모신다고 했지만, 성당 내부에는 친절한 가이드 맵이 없어 찾을 길이 없었다.


 

성당 뒤편으로는 광장이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로마에 있는 것 중 제일 오래된 오벨리스크5)가 서 있다. 

로마 시내의 웬만한 광장에는 꼭 중앙에 오벨리스크 아니면 하다못해 로마 황제의 원주 기둥이라도 하나쯤은 서 있다. 

고대 로마는 개방적인 나라였기 때문에 나름 전리품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여기저기 세웠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중세 이후 기독교의 본산인 로마가 이집트 이교의 상징인 오벨리스크에 집착하는 모습은 괴이하다. 

이런 오벨리스크 사랑은 로마를 짝사랑한 파리와 그 파리를 동경한 독일의 포츠담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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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칼라 산타 


성당 맞은편에는 스칼라 산타(성스러운 계단)라는 작은 교회가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떼 온 옛 총독관의 계단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고초를 받으신 곳이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진과 화재로 계단 원형은 없어졌고 

지금은 계단의 조각들을 넣어 만든 말끔한 형태의 오래되지 않은 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독실한 어머니(엘레나 성녀)는 이 계단과 함께 예수님이 매달리신 

나무 십자가 조각과 못을 가져왔다고 전해지는데 십자가의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황제의 어머니가 예루살렘에 오자 지방관이나 교회 관계자가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이미 그 시절은 예수님 사후 300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온 독실한 어머니(세 아들의 엄마인 마담)도 계단을 

마주하자마자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고 계단을 하나씩 오르면서 기도를 하였다.

내가 지루할 정도로 꽤 오랜 시간 기도를 하였다. 

참고로 마담과 나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로 성당에 안 나가고 있다.

 

다음 일정은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성당이다. 아우렐리우스 성벽 옆길을 따라 걸으니 이윽고 작은 성당이 나타났다. 

내부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 옆문으로 들어가면 성 십자가 조각, 예수님을 박은 못,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 가시, 

십자가 위에 있던 예수님의 죄를 적은 목판,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을 의심하여 

옆구리의 창상을 만졌던 성 도마의 손가락까지 금제 장식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다. 

옆의 작은 공간에 는 죽은 예수님을 감쌌다는 토리노의 수의 복사품까지 전시되어 있다. 

그 수의에는 사람의 얼굴 모양이 선명하다.

 

1) 정면, 외관.

 2) 로마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긴 1309년부터 1377년까지의 시기.

 3) 초기의 교회양식.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한 그리스도교 공인 직후에 볼 수 있었던 일반적인 장방형 성당 건축 형태.

 4) 미사 제단 위를 꾸미는 높은 덮개.

 5) 방첨탑(方尖塔). 점점 가늘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물.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진짜라면 이곳은 당장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신성한 곳이겠지만 너무 완벽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 

성당에 쓰여 있는 해설을 봐도 이 성유물들의 출처에는(독실한 어머니가 가져온 십자가 빼고) 

‘1300년대 이후 부터 믿어져 왔다.’ 라고만 적혀 있다. 

이런 종류의 성유물은 특히 십자군 원정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사들에 의해 유럽 전체에 넘쳐났다고 한다. 

1200년도 넘은 시점에 갑자기 성유물들이 무더기로 발굴되었을리 만무하다. 

누군가는 유럽 전체 성당에 퍼져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조각을 헤아려보면 

예수님은 십자가 가 아니라 숲에서 돌아가신 게 분명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의심을 마담에게 말했더니 아까 성 계단에서의 기도로 신앙심이 갑자기 

투철해지셨는지 나의 이런 의심이 십계명에 위배되는 죄악이라며 안타깝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십계명에 있는 건 어기지 말아야지.’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십계명을 찾아보니 '의심하지말라.'는 없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있다. 

참고로 마담은 성당 교리교사를 5년간 하였고 난 학교에서 가톨릭 동아리 회장을 맡았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한참을 달려 플라미니오 역에서 내렸다. 

이곳은 로마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 플라미니아 가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에서 나오니 바로 포폴로 문과 포폴로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순례자가 플라마니아 가도를 따라 로마에 왔으므로 이곳은 로마의 첫 얼굴과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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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폴로 광장 

 

 

포폴로 광장의 중심에는 늘 그렇듯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남쪽으로는 코르소 거리가 시작된다. 

포폴로 문으로 들어온 후 바로 왼쪽에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이 있다. 

성당 내부의 예배당에는 대가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체라시 예배당에 있는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극적이고 인상적이다. 

이곳은 기독교인의 철천지원수 네로 황제의 시신이 묻힌 곳이었는데 후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자 악령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덕분에 예술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로마에 불까지 질렀던 네로는 멋진 예술품들로 치장된 개인 무덤을 공짜로 갖게 되었다.

 

포폴로 광장에서 코르소 거리 옆으로 난 길인 리페타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나무와 수풀이 

가득한 이색적인 공원 같은 곳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라고 한다. 

이 묘 맞은편에는 아라 파치스(평화의 제단)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네모반듯한 흰색의 현대적 건물은 황제 묘와 더불어 바로크풍 로마 시내와는 대단히 이질적인 모습이다. 

입장료가 싸지 않았지만, 박물관에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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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 파치스 


관람객보다 직원이 많을 정도로 별로 인기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크기의 흰색 제단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제단의 부조 조각은 마치 최근에 한 것인 양 밝고 선명하다. 

기원전의 조각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원도 훌륭하다.

 

북동쪽으로 거슬러 한참을 올라가니 큰 계단에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헵번이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은 스페인 광장이다. 

사람들이 하도 젤라토를 먹다가 흘려서인지 관리인들이 젤라토를 들고 있지 못하게 하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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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제수 성당 천장

 

오늘은 봐야 할 곳이 많기에 스페인 광장에서는 사진만 찍고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특히 많은 성당을 봐야 하는데 성당은 대개 저녁 미사 전까지만 외부인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목이 말라 젤라토를 샀다.

가격이 적혀 있지 않은 곳의 젤라토는 역시 5유로였다. 

항의할 만큼 언어가 유창하지 않기에 또다시 비싸게 산 젤라토를 하릴없이 

홀짝이며 한참을 걸어 다음 목적지인 일 제수 성당에 도착하였다.

 

빼곡한 건물들 사이에 육중한 성당이 있고, 안에 들어가니 더 웅장한 실내가 있어 깜짝 놀라게 한다.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은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높은 큐폴라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셔터를 반사적으로 누르게 만든다. 

‘이단을 이긴 신앙의 승리’라는 조각상은 놀랄 만큼 역동적이고 강렬하다. 

로욜라의 은제 흉상이 바로 이곳이 예수회의 총본산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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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을 이긴 신앙의 승리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스페인의 군인 출신 

성직자 로욜라는 예수회를 조직하여 가톨릭과 교황의 군대를 자청했다. 

공격적인 선교 활동에 주력한 예수회 덕분에 가톨릭은 신대륙에서 압도적인 교세를 

확보할 수 있었고 동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임진왜란의 선봉에 선고시니 부대에 직접 종군한 이도, 

청나라에서 유배 생활을 한소현세자에게 서양 학문을 가르쳐 준 이도 예수회 사제들이었다.

 

일 제수 성당을 나와 근처에 있는 판테온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는 유서 깊은 수도회인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본산인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미네르바 신전 터 위에 있는 성 마리아 성당)이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 앞 작은 광장은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광장 한편은 공사 중이라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왠지 작은 코끼리 조각 위의 오벨리스크처럼 왜소해 보이는 전경이었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코너를 돌면 색 바랜 거대한 적색 벽돌 건물의 외벽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판테온이다.

거대한 크기에 놀라고 외벽에 짙게 묻어나는 2천 년의 세월에 또 놀라고 드넓은 광장과 판테온 실내를 가득 메운 많은 인파에 마지막으로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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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전경

 

'모든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 의미로 판테온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거대한 건축물은 어찌 보면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에는 사악한 이교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동로마제국의 포카 황제가 로마 주교에게 판테온을 '선물'하자 당시 동로마제국 라벤나 총독의 

보호를 받던 로마 주교는 선물에 화답하여 이 이교도의 본산을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축성하였다. 

우리가 2천 년이 넘는 이 고대의 신비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만약 로마 주교가 이 건물을 성당으로 축성하지 않았다면 세월을 거치며 고의로 혹은 자연적으로 훼손되어 

나중에는 터만 남았을 것이고 더 나중에는 이 터에 새로운 성당이 지어져 '산타 마리아 소프라 판테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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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테온 내부 천장 

 

웅장한 크기의 기둥들을 지나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거대한 둥근 천장과 중앙의 구멍에서 눈을 뗄 수 없다. 

2천 년 전의 기술로 이렇게 거대한 돔 건축물을 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판테온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말이 많은 우리의 미켈란젤로도 천사의 작품이라며 말을 보탰다. 

특히 웅장한 돔 형태 건축물의 시조 격으로, 로마를 동경하며 자국의 국력을 과시하고자 할 때 

거대한 크기의 돔형 건축물을 짓는 풍조가 판테온이 지어진 이후 전 유럽에 퍼지게 된다. 

동로마의 소피아 대성당, 피렌체의 두오모, 교황령의 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파리의 팡테옹, 베를린의 제국의사당…….

 

숨 가쁜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지인 성당들도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는 곳이 많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된다.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판테온 앞 광장 노천카페에 앉았다. 

빨간 토마토 파스타와 피자는 범상한 맛이었고 오히려 건더기가 없어서 아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1리터짜리 맥주는 매우 매우 시원했다.

 

마침 사람으로 북적이는 판테온 앞 광장에서는 세 명으로 이루어진 거리의 

버스커들이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으로 흥겨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중이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늘 나오는 장면처럼 한가롭게 유럽의 어느 거리에서 음악과 

식사를 즐기니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녹아들어 배 나온 이탈리아 아저씨가 된느낌도 났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남자가 뒤집힌 모자를 들고 노천카페의 사람들에게 

돈을 받을 때는 냉철하게 한국인 아저씨로 돌아와 전혀 음악을 안 들었던 사람처럼 시선을 회피하였다. 

젤라토를 사 먹기 위해서는 동전을 아껴야 한다.

 

다음 목적지인 피오렌티니 성당은 아직 점심시간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피오렌티니 성당 앞에서 테베레 강을 옆으로 하고 시스토 다리까지 

이어진 길은 쥴리아 길로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한적한 이면도로 느낌이다. 

쥴리아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미켈란젤로가 일부 손을 봤다는 르네상스 양식의 파르네제 궁이 보인다.

 

궁(palazzo)이란 꼭 왕가의 저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 집을 일컫는 것인데 주로 로마 유력가문의 저택이 많다. 

육중한 크기와 높이를 자랑하는 벽이 이곳이 여느 집이 아님을 말해준다. 

파르네제 궁은 현재 프랑스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어 관광객이 들어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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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리 광장의 브루노 상 


파르네제 궁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서 좁은 길을 조금 걸으니 피오리 광장이 나타났다. 

늦은 오후인데 장이 서서 사람들로 북적인다. 

과일주스, 올리브, 치즈 등등을 팔고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엄숙한 표정의 브루노 조각상이 서 있다. 

이곳은 미네르바 광장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브루노가 화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어두운 얼굴의 브루노와 시장의 북적이는 모습이 많이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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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토 다리 

 

다시 쥴리아 길로 돌아가 그 길의 끝인 시스토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테베레 강 위에 놓인,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인 시스토 다리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가 허물어진 것을 중세에 다시 지은 것이다.

 

초기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명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다리에 붙이도록 하였다. 

저 유명한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도 식스투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교황을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들은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공통적으로 예술을 사랑하여 많은 예술품을 현대의 로마에 남겨주었다.

 

다시 산 조반니 데이 피오렌티니 성당까지 갔지만, 여전히 문이잠겨 있었다. 

아쉽지만 다음 목적지인 테르미니 역 주변으로 가는 64번 버스에 올랐다.

 

테르미니 역 앞의 500인 광장 남쪽에 있는 마시모 박물관에 갔는데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로마와 피렌체 여행계획을 맡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지만 요일별 휴관 일을 체크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맞은편에 보이는 벽돌로 만들어진 큰 유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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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이곳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목욕탕 유적으로 목욕탕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르네상스 시기에 미켈란젤로가 이곳을 산타 마리아 델리안젤리 성당으로 개축하였는데 

최대한 목욕탕 유적을 활용하여 만들었기에 겉모습만 얼핏봐서는 건물 잔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깜짝 놀랄 크기의 넓은 공간이 여느 성당 못지않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훌륭한 예술가일수록 고대의 유물을 보호하고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때마침 성당 안에서는 이탈리아 할아버지와 젊은 일본 여성의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우리도 청주의 변두리 성당에서 결혼하긴 했는데 조금 비교가 된다. 

마담은 미켈란젤로가 지은 수천 년 된 아름다운 성당에서 결혼하는 저 여자는 두고두고 행복할 것이라며 마냥 부러워했다. 

나도 젊은 일본 여자와 결혼하는 할아버지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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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테레사의 희열 


북서쪽으로 조금 헤매다가 작은 성당에 도착하였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인데 지금까지 보아 온 성당들보다 아담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바로크 조각의 걸작,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희열’이 있다. 

천사의 불화살에 맞아 희열을 느끼는 성녀 테레사의 모습이 육감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생동감을 넘어선 섹슈얼한 이미지에 당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껴 외진 성당으로 옮겨 놓았다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바로크 시대의 최대 걸작으로 인정받는다.

 

해가 기울어지고 있으므로 사진만 찍고 나왔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오늘의 관람일정은 여기까지이지만 마시모 박물관 휴관으로 인해 

시간이 남았으므로 모레 가 보기로 하였던 산 피에트로 인 비콜리 성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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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반대편에 있어서 한참을 걸었다. 성당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급하게 사진을 찍는 데 의미를 두었다. 

성당 건물은 특별할 게 없었는데 이곳에는 베드로가 순교 당하기 전에 묶였던 쇠사슬(빈콜리)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대표적 조각상 중 하나인 '뿔 달린 모세 상'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다. 

성 예로니무스가 성서를 번역할 때에 '빛나는'을 발음이 비슷한 '뿔 난'으로 오역하였기에 중세의 사람들은 모세에게 뿔이 달린 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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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뿔 달린 모세 상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누이니 비로소 피로가 몰려온다. 

리는 오늘 너무 많이 걸었고 너무 많은 성당을 봤다. 

하지만 어제처럼 아까운 저녁 시간을 버릴 수는 없기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힘을 내기로 하였다. 

네이버에서 테르미니 역 근처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 나섰다. 

로드하우스라는 캐주얼 스테이크 집인데, 안으로 들어서니 여느 한국의 맛집처럼 한국인들로 붐빈다.

안내받은 자리의 옆 테이블은 한국에서 온 어느 목소리 큰 아저씨와 일가족이다. 

끊이지 않는 큰 목소리 덕분에 식사 내내 한국으로 돌아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식당을 나와 다시 로마로 와서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현준영

                                                                                                                 ​편집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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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On Board 2018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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