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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컬럼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 ‘시큘라크르’와 ‘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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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뫎1)’, ‘시뮬라크르’, ‘계열화’ 등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철학적 용어를 통해, 

한방소아·청소년과 임상을 진행하는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식론적 태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소 재미가 없더라도, 짧은 글이니 한 번 속는 셈치고 그냥 따라와 보시라.

 

00. '시뮬라크르'란?

 

먼저 ‘시뮬라크르(Simulacres)’에 대해 알아보자. 여러분은 아마도 걸작 영화 <매트릭스>를 한 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크게 대중화 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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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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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Plato)이 제일 먼저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림자’의 ‘그림자’”라고 이해하면 될 것 이다. 

즉, 매끈한 이데아적 세계(또는 기하학적 이상 세계)의 불완전한 모사(그림자)인 울퉁불퉁한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 울퉁불퉁한 현실에 대한 또 다른 불완전한 모사(그림자의 그림자)인 더욱 울퉁불퉁한 여러 예술 장르(시, 연극, 음악, 미술)가 

플라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대표적인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3)


그러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것의 도래를 매우 명시적으로 예견했듯이, 

21세기인 지금은 명실상부한 시뮬라크르의 시대4) 5) 이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실제의 시공간보다 더욱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상현실(Virtual Reality)이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역시 세련되고 가속화된 시뮬라크르 시대의 한 단면일 뿐이다.



01. 의학적 영역에서의 시뮬라크르

 

그렇다면 의학적 영역에서의 시뮬라크르는 무엇에 해당할까? 우리가 진료실에서 매일 사진(四診; 望聞問切)과 

이학적 검사(理學的 檢査, physical examination) 등을 통해 환자에게서 얻게 되는 최초의 임상 정보인 증상(Symptom)과 

징후(Sign)가 대표적인 의학적 영역의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6)

 

전통한의학에서의 처방(특히 약물처방)은 (비록 고전 한의학문헌에서 Why(왜 그런 질병이 생겼나?)나 

How(어떤 기전으로 질병 과정이 전개되었나?)에 대한 답변들이 현대인이 받아들이기엔 분명 모자란 점이 있는 게 

현실이지만) 시뮬라크르들(=증상과 징후들)이 특정한 방식(인간의 오관(감각기관)을 통해 파악될 수 있는 표층적 

수준에서의 수평적 방식)으로 계열화 7) 되어 환자에게 나타날 때, Where 즉 어디로 또는 

어떤 방향으로 환자를 이끌어야 임상적인 긍정성을 획득할 확률이 높은 약물 조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2000년 이상 누적된 경험의 집약체라고 인식론적으로 재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적 영역에서의 시뮬라크르가 단순히 환자의 증상이나 징후에만 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에는 심층적 실체를 질병의 본질이라 생각했지만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이것이 점점 시뮬라크르화해 가고 있다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하게 관찰되는 ‘(모세)기관지염’이라는 질병을 보자. 

한때는 독립적 본질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의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심층적으로 

조직학적 차원, 세포적 차원, 세포내 소기관적 차원, 분자적 차원 등 외부적 표현형의 시뮬라크르로서 위상이 변경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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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가 박상륭은 자신의 작품을 ‘뫎론’이라고 말한다. ‘뫎’이란 ‘몸(신체)’과 ‘말(외부적으로 발현되는 언어와 행동)’과 ‘맘(마음)’을 합친 조어(합성

어)이다. 박상륭은 모든 사람[有情]은 ‘몸’의 우주에서 ‘말씀(언어)’의 우주를 거쳐 마침내 ‘마음’의 우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파악한다. 다시 말해 그

에게 있어 ‘뫎’은 사람이 곧 작은 우주라는 전통적인 동북아시아적 인간관(또는 한의학적 인간관)을 현대인에게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한 언어적 설정

으로 보인다. 결국 필자는 21세기의 본격적 ‘시뮬라크르’ 시대에 “뫎”이라는 인간관의 현대적 복원이 (특히 한방소아·청소년과 임상 영역에서도) 필

요하다는 점을 개괄적 수준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2)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해킹을 하는 주인공 ‘네오’는 찾아온 고객에게 프랑스 현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그 유명한 저서 《시뮬

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속에 넣어둔 USB를 전달한다. 워쇼스키(The Wachowskis) 감독은 그 철학책이 ‘네오’의 책상

에서 툭 떨어지는 장면(뜬금없이 책 제목이 원샷으로 클로즈업(close-up) 된다)을 통해서 우리가 이미 매트릭스의 세계, 즉 시뮬라크르의 시대로 깊

 

숙이 들어섰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3) 그런 (부정적) 의미에서 플라톤은 본인이 추구하는 세계인 이데아에서는 (‘그림자’의 ‘그림자’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대중을 현혹시켜 순수한 이데

아 세계로부터 자꾸 멀어지게 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몽땅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4) 《시뮬라크르의 시대》는 철학자 이정우가 1999년에 발간한 단행본 이름이기도 하다. 철학자 중의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흔

히 “‘사건’의 철학자”로 불린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사유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의미의 논리》를 구체적인 언어로 해설한 책이기도 하다.

5) 플라톤처럼 시뮬라크르를 한낱 그림자의 그림자로서만 평가 절하하는 본질주의적 태도를 강하게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야말로 <전통한의학>과

<현대한의학>의 의미 있는 만남을 방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결국 <현대한의학적 임상>까지도 망치게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통한의학>은 시뮬라크르(증상 또는 징후 등)들의 반복적 패턴을 (주로) 수평적으로 계열화시켜

서 요령 있게 파악하고, 이를 다시 본초(약물)의 의미 있는 계열화(ex.군신좌사) 방식을 통해서 실제 임상적 해결을 도모했던, 동북아시아 고유의 의

학 체계라고 정리할 수 있다.

6) ‘유일한’ 시뮬라크르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자.

7)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본문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패턴화’라고 해석해 보자. 


한마디로 ‘시뮬라크르’라는 동일 위상의 개념어를 통해 수평적 계열화뿐 아니라 

수직적 계열화8) 도 가능하다는 인식론적 변환과정 위에 올려놓는다. 

이로써 양진한치(洋診韓治)라는 개념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현대 과학적 성과들을 전통 한의학의 임상 정보들과 융합하여, 

특히 인식론적으로 전혀 단절이나 혼란 없이 자유롭게, 임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변환을 통해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중·일과 미국, 

유럽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한의학이 임상적으로 부드럽게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임상이 더욱 유의미하게 발전할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02. '시뮬라크르'와 소아·청소년과


그렇다면 이러한 의학적 영역에서의 새로운 ‘시뮬라크르 시대’를 맞아 특히 한방소아·청소년과 영역에서 

요구되는 기본적 인간관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뫎’이라는 기본적 인간관을 통해서 보다 

더 세련된 한방소아·청소년과의 임상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해본다.

 

천재 소설가 박상륭(1940~2017)의 문학작품9)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북아시아적 

인간관의 언어 표현 양식인 ‘뫎’은 한방소아·청소년과 영역에서의 기본적인 인간관으로 삼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뫎’의 글자 속에 인간의 몸과 마음, 그리고 말(행동)의 혼연일체가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心)과 신(身)이 하나 된 ‘심신일여(心身一如)’야말로 서양의학과 구별되는 한의학적 인간관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어적으로 개념이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게 접합된 의미만 전달될 뿐이다. 

그래서 이보다는 통합적 의미가 살아있는 ‘뫎’이라는 표현을 차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APA)에서 발간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disorders, DSM)〉의 

‘총론’ 파트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특히 DSM-IV10) 에서는 정신장애에 대한 보다 많은 임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다축평가 시스템(multi-axial assessmentsystem)’을 채택하고 있다. 

Bio-Psycho-Socio-Culturalassessment, 

즉 정신과영역에서조차 몸(물리화학적 존재)-마음(심리적 존재)-말(사회문화적 존재)의 ‘종합적 평가’를 임상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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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직적 계열화’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꼭,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도 수평적 계열화에만 익숙해지도록 교육받아 왔다. 물론 수평적

계열화를 이제 그만 버리자는 주장이 아님을 강조한다. 필자의 주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수평적 계열화뿐 아니라 수직적 계열화까지도 종합해서 (특

히 한방소아청소년과) 임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9) 박상륭의 대표작 중 하나인 《죽음의 한 연구》에 대한 비평을 참고하여 아주 짧은 문장으로 올려본다. “《죽음의 한 연구》는 한국문학이 박상륭을 잃

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즐거움을 전한다. 나는 그의 소설을 거의 일주일에 걸쳐서 정독을 했다. 그리고 완전히 감동했다. 그것이야말로 내 좁은

안목으로는 70년대 초반(1975)에 쓰인 국내 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정》 이후에 가장 좋은 소설 중의 하

나였다.” by 김현(문학평론가, 1942~1990)

10) 물론 2013년에는 이미 DSM-5가 발간된 바 있다.

11) 필자는 특히 임상한방소아·청소년과 영역에서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수록 보다 더 ‘뫎’적 존재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주장

을 펼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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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의예과 1학년 때의 한의학원론 강의 때부터 그렇게나 강조해 왔던 ‘임상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보다 종합적으로(거시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의사로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장 구체적·현실적·현대적으로 깔끔하게 설명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방식11) 은 비단 정신과 영역에서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뫎’적 존재인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대할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인식론적 접근 방식이 아닐까.


03. 맺는말


‘듣보잡’스러운 낯선 용어들과 다소 서툰 논리 전개를 인내심으로 참고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실 필자는 보다 더 미시적·시청각적으로 인체를 관찰할 수 있는 첨단의료기기들이 대중화되는 순간 

‘시뮬라크르’, ‘뫎’, ‘수직적 계열화’ 등과 같은 단단한 개념어들을 튼튼한 인식론적 토대로 삼아서, 

한방소아·청소년과 임상이 훨씬 더 풍성해질 것 이라고 확신한다.


혹자는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충분히 대우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유구한 

한의학적 임상 전통을 격하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데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버릴 것을 당부한다.

 

첫 번째의 도미노(본질이라고 생각‘만’ 되는……. 결국 한 겹 벗기면 1차적 심층 차원의 시뮬라크르일 뿐인 도미노) 하나를 잘

찾아서 무너뜨리면, 환자가 당장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나머지도미노들(표층적 차원의 증상이나 징후들로서의 시뮬라크르들)이 

주르륵 모두 엎어질 것이라고 하는 모자란 또는 위험스러운 생각을 바꾸자. (특히 한방소아·청소년과 임상을 전혀 안 해본 티가 역력한) 

마술적 상상을 이제 중단하자.


한의학 선현(先賢)들은 당시의 명백한 시대적 한계 조건에서도 환자를 좋은 임상적 

방향으로 이끌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고전문헌 속 선현들의 누적된 임상 경험과 21세기 현대 과학기술로 확인된 ‘새로운 심층적차원의 시뮬라크르’를 

‘수직적 계열화’라는 부드러운 결합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시뮬라크르들의 패턴화’를 반복한다면, 

결국 소아·청소년 환자들에게 보다 만족스럽고 발전된 현대 한의학적 임상을 구현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황만기

                                                                                                                                                                      편집 조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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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On Board 2018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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