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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컬럼 의사가 하고 싶은 것 vs 환자가 받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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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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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정보협동조합 조합원 강제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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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하고 싶은 것 vs

환자가 받고 싶은 것

  

얼마 전 후배랑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예과 2학년과 본과 1학년 여름방학 때 공부를 하겠답시고 절(寺)에 들어갔었죠.

심지어 삭발까지 하고 말이죠. 삭발을 해보니 왜 삭발을 하는지 알겠더군요. 머리감기가 편해요.

예과 2학년 때는 절 생활 중간에 인근 마을로 나와서 의료봉사도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의욕만 넘쳤지 뭘 얼마나 알았겠습니까? 근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밌는 게, 

그 당시의 치료 반응이 그 후의 어떤 의료봉사 때보다 좋았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이 호전되어 눈물을 흘리셨던 아주머니도 계셨고, 잘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떡 두 박스를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심지어 어떤 할머니는 너무 고맙다고 꼬깃꼬깃 때 묻은 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주시기도 했지요. 

아무리 안 받겠다고 거절해도 막무가내여서 당시 책임자에게 이야기하고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 만원은 아직도 제 왕진가방에 고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삭발을 해야 할까요?

 

왜 예과 2학년 나부랭이가 의료봉사에서 시행한 치료 아닌 치료가 효과를 발휘했던 걸까요?

아마도 의사가 ‘하고 싶은 것’과 환자가 ‘받고 싶은 것’의 순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사들이 하고 싶은 것

환자들이 받고 싶은 것 

1위. 치료(결과에 집착)

2위. 자신의 존재감

3위. 친절

1위. 자신의 존재감(친절, 위로)

2위. 의사에 대한 신뢰감

3위. 치료(결과) 

 

무슨 말인지 다 아시죠? 의사들은 어찌되었든 치료(결과)에 목숨을 겁니다. 

어떻게 침을 잘 놓고 좋은 처방을 써서 이 질병을 치료할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환자가 호전을 보이면 ‘내 덕분이야. 난 참 실력이 좋아, 후훗’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뿌듯해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친절한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환자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의사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환자들은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의사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 내원하지만 환자에게 있어 치료결과는 그 다음의 문제가 되어버리기도 하지요.

이건 제 주장이 아닙니다. 의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널리 알려진 내용으로, 

아브라함 베퀴즈(Abraham Verghese)의 감동적인 TED 강의를 보시면 참고가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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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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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① 충분히 공감하고 친절하며

② 신뢰감을 주는 의사라고 착각하면서 오늘도 역시나

③ 치료(결과)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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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Sir Luke Fildes, exhibited 1891 

지금의 의사를 그리라면 우리는 무엇을 그릴까요?

 

원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다시 지리산의 절(寺)로 돌아갑시다.

당시 제가 절에 무슨 책을 가지고 들어갔냐면, 이것도 역시 조금 웃긴데요. 《중용(中庸)》과 당종해(唐宗海)의 《본초문답(本草問答)》,

그리고 여강출판사에서 나온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들고 갔습니다. 예과생이 동의보감을 읽어봤자 딱히 아는 것이 있었을까요?

인터넷도 안 되는 곳이라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보니 《중용》과 《본초문답》은 지겹도록 읽었습니다.

《동의보감》은 뭘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딱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혈문(血門)>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코피를 많이 흘린 경우 신열(身熱)이 있고 맥이 부삭(浮數)하면 예후가 나쁘고, 맥이 침(沈)하면 예후가 좋다는 내용입니다.

그 부분은 당시에도 이해를 했던 것 같아요. ‘피는 음(陰)에 속하므로 출혈이 있더라도 양이 많지 않으면 아직 양(陽)이 의지할 곳이 있으니 맥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출혈량이 많으면 양(陽)이 의지할 곳이 없어져서 떠오르니 열(熱)이 나면서 맥이 부삭(浮數)해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이후로 《상한론(傷寒論)》 위주의 공부를 하다 보니 지금은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때 읽었던 것이 현재 공부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라 위안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한의대생들이 방학 때 절에 와서 공부하는 것을 생각만 하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군(君)은 일단 여기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거다. 책 많이 볼 생각하지 말고 바람이나 쐬고 가라.”

 

스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산에 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 남는 건 공부가 아니더군요. 산에는 곤충들이 정말 많습니다.

스탠드를 켜고 책을 보고 있으면 모기는 물론 풍뎅이 같은 벌레들이 아주 많이몰려듭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책을 읽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귀찮으니 손톱으로 찍어 죽이거나 손가락으로 튕겨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태도가 자연스럽게 바뀌더군요.

길을 잃고 방에서 헤매는 풍뎅이를 손에 담아서 멀리 날려 보내면 그 풍뎅이가 다시 날아가면서 허공에 그리는 선(線)! 그 뒷모습이 너무 보기 좋은 겁니다.

그래서 모기를 제외한(이놈들은 끝내 봐주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른 곤충들은 조심조심 다 살려주면서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됐지요.

아, 사람이 산에 들어오면 선해진다는 말이 있던데 이게 그런 말인가 보다. 

해질녘 노을을 배경으로 그 풍뎅이가 날아가던 뒷모습은 아직 제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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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있다 보니 밥 먹고 산책하는 게 일입니다. 매일 아침에 밥 먹고 한 시간쯤 산책을 하면서 어느 순간 발견한 것이 있는데, 

거미들은 그 날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기막히게 예측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비가 오는 날은 이놈들이 거미줄을 안 치거든요.

아무리 하늘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던 날도 거미줄이 안 보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후에 소나기가 옵니다.

미물이지만 정말 신통하다고 생각했죠. 근데 말입니다, 산에서 두문불출한 지 한 달쯤 되니 저에게도 비슷한 감각이 생기더군요.

처음에는 전혀 감을 못 잡았는데, 산에서 지낸 시간이 어느정도 되니 그 날 소나기가 올지 안 올지를 거의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색깔, 기온, 구름의 모양 등을 보면 느낌이 오더군요. 어디가 쑤시고 아파서 맞춘 것은 아니고요.

저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고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배웠습니다.

아마 저에게도 거미와 같은 미물이 지닌 탁월한 감각의 원초적인 형태는 내재되어 있을 겁니다.

그런 부분을 잘 키워서 환자를 치료할 때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한 두세 달쯤 다시 지리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면 “가도 좋다. 하지만 돌아올 생각은 말아라” 정도의 대답이 나오겠죠?

나중에 아이들이 다 크면 아내와 함께 바람 쐬러 가야겠어요.

 

 

출처- On Board 2017 SUMMER ' 의사가 하고 싶은 것 vs 환자가 받고 싶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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